
톰 클랜시의 스릴러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서술 방식으로 굉장히 상세하게, 그리고 시간순으로 빈틈없이 쓴 이 작품은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몇몇 오류를 분석한다. _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 (추천사2p)
서문 _9
덴마크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역사는 "앞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이해"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흥미와 예측 불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시간순으로 설명하려고 공을 들였다. (12p)
제1장 미국인 _19
몇몇 사람들은 랜스데일이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쓴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의 성실하지만 고지식한 주인공의 실존 모델이었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시아 정글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출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변에 큰 혼란을 야기하는 인물이었다. (32p)
랜스데일이 관심을 가진 또 다른 프로젝트는 쿠바인들의 카스트로에 대한 저항을 "구사노 리브레(gusano libre : 해방 벌레)"로 이름 붙이는 것이었다. 쿠바 정부는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을 "벌레"라고 계속 비난했다. 이 표현을 빌려 카스트로를 비난하길 원했던 랜스데일은 망명자들이 자신들을 "해방 벌레"로 여기고 소규모 파괴 공작 활동을 통해 내부에서 쿠바 경제와 정치 체제를 전복시키도록 조장했다. 하지만 이런 심리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자존심이 강하고 마초 기질이 다분한 쿠바인들은 해방이란 말과 상관없이 벌레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34p)
장병들은 박수치고 휘파람 소리를 냈고, 축하의 의미로 기관총 일제 사격으로 화답했다. "로디나 일리 스메르트, 파트리아 오 무에르테(Rodina ili smert. Patria o muerte :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멘세레모스(Venceremos : 우리가 승리하리라)." (54p)
소련군의 배치 규모는 CIA가 판단한 최악의 상황을 훌쩍 뛰어넘었다.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은 10월 20일 브리핑에서 쿠바에 배치된 소련군 병력이 "6000~7000명"이라고 했다. CIA 분석관은 대서양을 횡단한 소련 선박 수와 가용한 갑판 공간에 대한 관측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계산은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었다. 그것은 미군이 절대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버틴 소련군의 인내력이였다. 10월 20일 무렵 4만 명이 넘는 소련군 병력이 쿠바에 도착했다. (57p)
제2장 소련인 _63
흐루쇼프 자신도 집무실 휴식 공가에 있는 소파에서 옷을 입은 채 잤다. 흐루쇼프는 1956년 수에즈 위기 중 야밤에 "말 그대로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붙잡힌"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83-84p)
제3장 쿠바인 _103
나중에 쿠바 작가 에드문도 데스노에스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배경으로 한 『저개발의 기억』이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을 결정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섬은 덫이다." (117p)
E동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앤더슨 제독이 말한 개인 철학은 간단한 격언 몇 가지였다. "철저하게 기본을 지켜라. 세부 사항은 참모에게 맡겨라. 부하의 사기에 집중하라.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투덜거리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 (123p)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카스트로도 타고난 대중 연설가는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어느 정도 타고난 내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케네디는 1946년 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 차츰 편안해질 때까지 개인적으로 수차례 반복 연습을 하곤 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너무 불안하게 느낀 카스트로는 일부러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 번에 5~6시간 이어지는 카스트로의 달변이 그의 숫기 없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128p)
제4장 "눈싸움" _151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두려움은 미국 대중문화에도 스며들었다.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밥 딜런이라는 헝클어진 머리의 음유시인은 스프링 제본 노트에 〈어 하드 레인즈 고나 폴 A Hard Rain's Gonna Fall〉이란 노래의 가사를 쓰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는 "죽음의 느낌"을 담아내길 원했다. 밥 딜런은 갑자기 종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살아남아 또 다른 노래를 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한 그는 "가능한 한 최고의 곡을 뽑아내길 원했다"고 회고했다. (158p)
제5장 "주야장천" _193
제6장 정보 _227
제7장 핵무기 _263
흐루쇼프는 양측의 대치 상황을 정치적 라이벌이 양쪽 끝에서 당기면 당길수록 더 팽팽해지는 매듭에 비유했다.
너무 단단하게 묶여서 묶은 사람조차 풀 힘이 모자라 매듭을 잘라야만 할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양국이 보유한 끔찍한 군사력을 대통령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이런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매듭을 팽팽하게 당겨 세계를 핵전쟁의 재앙으로 몰고 갈 의향이 없으시다면, 매듭 끝을 당기고 있는 힘을 약하게 할 뿐 아니라 매듭을 풀 대책을 마련합시다. (273p)
제8장 선제공격 _299
1960년 10월 바이코누르에서 실시한 첫 번째 시험 발사 때 R-16이 발사대에서 폭발했다. 이 때문에 양겔이 라이벌인 세르게이 코롤레프를 꺾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현장에 있던 엔지니어, 과학자, 군 지휘관 126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에는 전략로켓군 사령관인 미트로판 네델린 원수도 있었다. 사고는 은폐되었고 문제점은 개선되었다. (308-309p)
베다도는 덩굴로 뒤덮인 포르티코(기둥으로 받쳐진 지붕이 있는 현관 - 옮긴이)에 희미한 가로등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공기 중에 아몬드 나무 향이 떠다니는 밤에 특히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310p)
소련 관리들이 머리를 기른 젊은이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던 시절에 체 게바라같이 긴 머리의 혁명가들을 공식적으로 미화하는 상황에는 매우 유쾌한 아이러니가 있었다. 쿠바에서는 모든 것이 소련과 반대였다. 고위 관리일수록 머리가 더 길었다. (327p)
제9장 그로즈니호 사냥 _343
케네디의 건강 문제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지만, 대토영 자신과 대통령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허약한 건강 상태는 내성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을 갖게 했다. 케네디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해 농담을 했다. 동시에 "지구 상에서 마지막 날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방법을 일찍부터 배웠다. 케네디 전기 작가 중 한 명이 말했듯이 숙적인 피델 카스트로처럼 케네디는 "흥분에 중독"되엇다. 케네디의 삶은 "권태와의 싸움"이었다. (370p)
케네디가 카스트로나 흐루쇼프와 다른 점은 삶을 초연하고 역설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였고, 이것은 케네디가 오랫동안 앓은 질병과 관련이 많았다. 케네디는 통념에 항상 의문을 가졌다. 자아도취적인 카스트로에게는 오직 자신의 행동과 의지만 중요했다. 흐루쇼프는 국제적인 사건을 정치적인 힘의 단순한 계산으로 바꿔놓았다. 케네디는 상대방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투영하는 능력"은 저주인 동시에 케네디의 장점이었다. (370-371p)
전쟁에 대해 지껄이고, 몇 년에 걸쳐 백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더라도 일본놈들을 때려눕혀야 한다고 떠벌리기는 매우 쉽지. 하지만 그런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해. 수십억 달러나 병력 수백만 명이란 말에 너무 익숙해져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쉽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런 수천 명이 내가 본 열 명처럼 살기를 원했다면, 결정권을 쥔 사람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에 어떤 분명한 목표가 있다고 확실히 밝히는 것이 좋고, 또 목표를 이뤘을 때 그 일이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 안 그러면 모든 일이 잿더미가 되고, 전쟁 뒤에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말 거야. (371-372p)
군 최고통수권자가 된 뒤에는 의도하지 않은 전쟁의 결과를 훨씬 더 크게 걱정했다. 1962년 초,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은 『8월의 포성』이라는 제목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관한 책을 펴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42주간 오른 이 책의 요지는 실수와 오해, 잘못된 소통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고 각국이 결과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채 전쟁에 뛰어든다는 것이었다. 『8월의 포성』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은 케네디 대통령은 책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보좌관들에게 읽으라고 권했다. 또한 "모든 군 장교들"도 읽기를 원했다. 육군 장관은 전 세계 모든 미군 기지에 책을 보냈다. (372p)
제10장 격추 _377
제11장 "몇몇 개자식" _411
제12장 "죽기 살기로 도망치기" _443
제13장 고양이와 쥐 _475
제14장 철수 _511
정면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민 2층 저택인 노보오가료보 다차는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과 많이 닮았다. 이곳은 원래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총리에 오른다고 알려졌다가 얼마 안 가 더 막강한 흐루쇼프에 의해 밀려난 게오르기 말렌코프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말렌코프가 치욕적으로 물러난 뒤, 정부는 이곳을 몰수해서 영빈관으로 바꿔놓았다. 수십 년 뒤 노보오가료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휴양지이자 1991년 소련 해체로 이어진 협상 장소로 더 유명해졌다. (514p)
12월 말 무르만스크로 귀환한 잠수함 지휘관들은 상관의 냉대를 받았다. 소련 선박의 기술적인 결점이나 미 해군의 우세는 참작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임무 실패에 대한 비난은 계획을 엉망으로 짠 제독이나 정치국원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실행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국방부 부장관인 안드레이 그레치코 원수는 자신들이 처했던 난관을 설명하려던 잠수한 함장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너무 화난 나머지 안경을 벗어서 회의 테이블에 내리쳐서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523p)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원고 검토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보통 몇 시간, 때로는 며칠 전 원고를 받아서 공감대 형성과 사상적 확신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면서 완벽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러시아어로 딕토르diktor라고 알려진 뉴스 아나운서는 소련 정부의 목소리였다. 딕토르 다수는 유명한 스나티슬라브스키 학교에서 메소드Method로 알려진 방식으로 연기 훈련을 받은 숙련된 배우였다. 배우들은 진정성 있게 보이기 위해 배역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배우 스스로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라야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딕토르의 목소리는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는 자부심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범죄 행위를 열거할 때는 싸늘한 분노로 넘쳐났다. (529p)
지난 24시간 동안 전임자인 아브라함 링컨처럼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이 사건을 통제했는지 사건이 자신을 통제했는지 자문해야 할 순간이 많았다. (535p)
케네디 대통령은 역사가 항상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때로는 온갖 종류의 광신자들이 긴 턱수염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는 동굴에서 생활하는 사상가나 총을 든 암살자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하고, 미사일을 잘못 식별하며, 군인이 이성을 잃는 등의 사건이 결합되어 예정된 경로를 벗어날 수 있다. 정치인은 역사의 혼란스러운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틀려고 애를 쓰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모든 상황이 유동적인 전쟁 시기나 위기 시에 항상 더 크다. (535p)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알려진 사건 기간에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누가 역사를 통제하는가였다. 백악관의 고위 관료일까? 턱수염을 기른 사람? 군복을 입은 사람? 아니면 아무도 아닐까? 이 드라마에서 케네디는 결국 자신과 사상이 전혀 다른 상대인 니키타 흐루쇼프와 같은 편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풀어주는 것을 도운, 어둡고 파괴적인 악마를 미래 세대가 통제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539-540p)
커티스 르메이는 영화 〈닥터스트레인지러브〉에 등장하는 정신 나간 공군 장군인 벅 터지슨의 실존 모델이 되었고, 1968년에는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조지 월러스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했다. (549-550p)
후기 _551
케네디의 보좌관들은 10월 28일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흐루쇼프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대한 정부의 공적을 주장하기 위해 검은 토요일의 외교 전략을 설명할 때 "트롤로프의 수 Trollope ploy"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트롤로프의 수는 앤서니 트롤로프가 쓴 소설 속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었다. (553p)
승자와 패자 문제를 생각해 보자. 미사일 위기가 끝난 직후, 대부분의 사람, 특히 대부분의 미국인은 최대 승자로 케네디를 지목하는 것이 확실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재앙적인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청수시킨다는 기본 목표를 달성했다. 적어도 케네디가 생각하기에 최악의 패자는 피델 카스트로였다. 카스트로의 생각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한 흐루쇼프의 결정을 라디오에서 들은 카스트로는 격분한 나머지 거울을 깨뜨렸다. 쿠바는 초강대국 대결에서 인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사일 위기는 카스트로가 40년 넘도록 쿠바에서 집권하는 것을 보장했다. 엄청난 외교적 승리를 달성한 지 1년이 조금 지나, 케네디는 "쿠바를 위한 페어플레이" 소속의 활동가에 의해 암살당했다. 1년 뒤 흐루쇼프도 실각했고,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쿠바를 둘러싼 모험 때문이었다. 결국은 카스트로가 위대한 생존자였다. (559p)
비스마르크는 정치적 통찰을 다른 무엇보다 "역사의 먼 발굽 소리"를 듣는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검은 토요일에 각료회의실에서는 터키에 있는 주피터 미사일을 포기함으로써 나토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둘러싸고 논쟁이 격화되었다. 그 순간 케네디는 역사의 먼 발굽 소리를 예민하고 듣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자문위원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을 생각한 반면, 케네디는 역사적 측면을 생각했다. 케네디는 자신이 흐루쇼프가 엄포를 놓고 있음을 밝히지 많으면,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의 세력 균형이 영원히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회의실에 있던 다른 누구보다도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더 잘 이해했다. (562-563p)
자료 출처 및 감사의 말 _567